[천자칼럼] 약현성당

입력 2022-12-25 17:43   수정 2022-12-26 00:07

1892년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 국내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된 고딕식 건물, 1984년 성인 반열에 오른 순교 성인 103위 가운데 44위를 품은 순교 성지….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은 명동성당보다 6년 먼저 세워진 ‘한국 성당의 어머니’다. 약현(藥峴)은 ‘약초밭이 많은 고개’라는 뜻으로, 중림동의 옛 지명이다. ‘동의보감’의 허준이 이 동네에 살았다.

조선 초기에는 반석방(盤石坊)으로 불렸다. 조선 천주교 첫 영세자인 이승훈의 집이 이곳에 있었다.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초기 교회의 반석’ 역할을 하다 순교한 ‘한국 천주교회의 베드로’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성당 아래쪽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약현성당은 지금의 순화동인 수렛골에서 한옥 공소로 출발했다. 1891년 종현(명동)본당에서 분리돼 서울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다. 신자 수가 사대문 안에 있는 본당보다 많아지자 성당을 새로 지었다.

1998년 한 취객의 방화로 불탔다가 복원된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도 성당 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열린 성소’다. 이 같은 역사적 전통 덕분에 대를 잇는 신자가 많다. 도심 속의 공원 같은 풍광에 분위기가 고즈넉해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결혼하고 싶은 장소 1위로 꼽힌다. 그저께 성탄전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해 화제를 모았다. 윤 대통령의 세례명은 ‘암브로시오’다.

성당 아래쪽에 있는 서소문역사공원은 신유·기해·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자가 처형당한 국내 최대 순교지다. 정약용의 셋째 형이자 이승훈의 처남인 정약종,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이 참수당했다. 그래서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약현성당과 이곳을 찾아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이곳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입구 벽면에 특별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 이승훈이 참수되기 직전에 남긴 이 말은 생사를 뛰어넘은 믿음의 반석과 한국 천주교회의 아픈 역사를 아우르는 불후의 명문으로 남아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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